들어가며
현관문을 여는 대신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연다. 엘리베이터 버튼 대신 접속 버튼을 누르고, 보안 게이트 대신 로그인 창을 통과한다. 이것은 생계를 위한 출근이다. 말 그대로, 인류는 이제 게임 속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두 개의 거대한 곡선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다. 한쪽에서는 대(大) 대체가 일어나고 있다. 자동화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은 물류창고의 로봇, 자율주행, 생성형 AI의 모습으로 인간의 일자리를 빠르게 지워나간다. 다른 한쪽에서는 대 이주가 시작된다. 게임, 플랫폼, 메타버스는 더 이상 시간 낭비의 공간이 아니라 소득과 자산, 때로는 생계 자체가 걸린 가상 경제의 터전이 된다.
이러한 양상의 변화는 이미 현실에서 여러 차례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경제가 흔들릴 때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잃는 동시에, 생존을 위한 새로운 기회를 찾아 이동했다. 과거 산업화 과정에서 생계를 잃은 농민들이 공장 지대로 밀려들며 도시 노동자로 변모했던 것처럼, 노동은 언제나 자본과 기회가 흐르는 곳을 향해 재배치되어 왔다. 한국의 온라인 게임 시장을 뒤흔든 ‘아이템 작업장’, 팬데믹 시기 급부상한 가상 세계의 노동 또한 그 연장선에 있는 현상이었다. 이는 물리적 일터가 위축될 때 인간의 동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그리고 가상 세계라는 새로운 영토에서 노동이 어떤 방식으로 재발명되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징후였다.
이 글은 마케팅 용어가 되어버린 ‘P2E(Play to Earn)’나 ‘X2E’의 껍질을 벗겨내고, 그것을 ‘디지털 노동(digital labor)’이라는 사회적 현상으로 직시하려 한다. 목표는 바로 이 다가올 노동의 예고편을 해부하는 데 있다. 그리고 ‘AI 과도기’에 현실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이 가상 경제 안에서 지속 가능한 생존 기반을 만들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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