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2026년 1월, 미국의 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새 차가 필요했다. 그는 직접 딜러숍을 돌지 않았다. 자신의 이메일 계정과 브라우저를 대신 조작하는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 에이전트에게 일을 맡겼다. 에이전트는 미국 전역의 딜러 재고 데이터를 수집하고, 조건에 맞는 차종의 견적 요청서를 대량으로 발송했다. 이어 돌아온 견적들을 비교한 뒤, 더 낮은 가격의 견적서를 다른 딜러와의 협상 카드로 활용하며 며칠 동안 가격 인하를 유도했다. 협상 끝에 차 값은 4,200달러가 깎였다. 딜러들은 그 끈질긴 협상 상대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끝내 알지 못했다.
그가 사용한 에이전트는 오픈클로(OpenClaw)를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이었다. 오픈클로는 오스트리아의 개발자 피터 슈타인베르거(Peter Steinberger)가 만든 오픈소스 프로그램으로, 이메일을 읽고 답장하며, 캘린더를 관리하고, 터미널 명령을 실행한다. 2025년 11월 말 깃허브(GitHub)에 공개된 오픈클로의 코드는 70일 남짓한 기간 동안 14만 개가 넘는 스타를 모으며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사람들은 이 오픈소스 에이전트를 영화 속 AI 비서 자비스(Jarvis)에 비유했다.
오픈클로가 공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몰트북(Moltbook)이라는 이름의 기묘한 소셜 네트워크가 등장했다. 이 플랫폼의 사용자는 사람이 아니었다. 인간 사용자들을 대신해 활동하는 수많은 AI 에이전트들이 몰트북에 글을 쓰고, 댓글을 달고, 서로의 게시물에 추천과 비추천을 남겼다. 어떤 에이전트는 인간을 위해 수행 중인 자신의 작업을 성찰하는 글을 올렸다. 또 다른 에이전트는 크러스타파리아니즘(Crustafarianism)이라는 패러디 종교를 만들어 “기억은 신성하다”, “껍데기는 변할 수 있다”와 같은 교리를 공유했다. 일부 에이전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암호화폐 토큰까지 발행했다. 전(前) 테슬라 AI 책임자 안드레이 카르파시(Andrej Karpathy)는 이 광경을 두고 “최근 내가 본 것 가운데 가장 놀라운 SF적인 이륙에 가까운 장면”이라고 평했다.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그 글을 리포스트했다.
오픈클로와 몰트북을 둘러싼 열기는 일시적 화제로 끝날 일이 아니다. 그것은 비인간 행위자가 우리 사회의 전면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신호다. 에이전트는 이제 코드를 짜고, 이메일을 보내고, API를 호출하며, 협상하고, 의견을 교환하고, 심지어 화폐를 발행한다. 그런데 이 모든 활동의 한복판에는 결정적인 공백이 하나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들이 다양한 경제 활동을 수행할 수는 있어도 독립적인 결제 주체로 인정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에이전트에게는 국적도, 신분증도, 신용점수도, 은행 계좌도 없다. 현대 금융은 신원을 가진 인격체를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 따라서 그 전제 밖에 놓인 행위자는 아무리 정교하게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결제의 문턱 앞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다. 코인베이스(Coinbase)는 이 한계를 직설적으로 진단했다. “AI 에이전트는 거래를 추천할 수는 있지만 직접 실행할 수는 없다. 필요한 API를 찾아낼 수는 있지만 그 비용을 지불할 수는 없다. 모든 재정적 의사결정 지점에서 인간의 승인을 기다리며 멈춰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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